[필리핀 여행일기] 나는 인도네시아인

가장 좋아하는 나라를 꼽자면 (한국을 제외하고)항상 인도네시아를 꼽는다. 많은 나라를 여행한 건 아니지만 일곱 개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매력을 따라오는 나라는 아직 없다.

인도네시아 매력 중 하나는 언어다. 인도네시아 바하사라고 불리는 언어는 배우기 쉬운 언어 중 하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는 15일의 기간 동안 많은 바하사 단어를 배웠다. 지금 필리핀에 산지 석 달이 되어가는데 아마 필리핀어보다 더 많이 배웠지 싶다.

인도네시아에서 넘어간 싱가폴에서도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바하사를 쓰곤 했다(말레이시아도 바하사를 사용. 말레이시아 바하사라고 부름/말레이시아와 붙어있는 싱가폴에는 말레이시아인이 많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선 바하사를 쓰지 못해서 오는 아쉬움도 느꼈다.

음식도 매력 있다. 몇 해 전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인 나시고랭의 나라이며 다른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도 많았다(다음 해 베트남을 다녀오고 나서는 베트남 음식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바뀌긴 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인도네시아 반 친구들이 많이 생기자 신이 나서 많이 까먹어서 얼마 모르는 바하사를 친구들에게 외치며 다녔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각자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발표를 끝내고 선생님이 좀 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인도네시아를 좋아하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요반이 내게 답변 기회를 넘겨줬다. 난 신나서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게 인도네시아인이냐며 웃으며 놀렸고, 인도네시아 반 친구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친구들과 같이 재미있고 친절한 인도네시아인들이 인도네시아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필리핀 여행일기] 거인의 나라

나는 키가 크지 않은 편이다. 160cm가 채 되지 않는다.

필리핀 평균 남자 키는 163.5cm, 여자 평균 키는 151.8cm로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경험들을 겪게 된다.

지피니를 타고 내릴 때마다 머리를 부딪치는 것은 예삿일이고, 아침에 학교에 갈 때마다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구간이 있다.

얼마 전 스카이와 지안과 한 식당 2층에 올랐을 땐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두세 달을 필리핀인들과 지내다가 얼마 전 이곳 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우리 반엔 중국인이 8명이나 있는데, 5명이 여자고 다들 키가 매우 크다.

175cm 정도 될 거라 예상하고 키를 물어봤는데, 친구들 키는 170cm가 안 되었다. 필리핀에 살다 보니 이곳 평균 키에 적응이 된 거다.

문득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키를 떠올렸다. 그리곤 여기에서 오래 머물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거인국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07/13/25 추가]

19년도에 필리핀에 살다가 싱가폴에 잠깐 들리고 호주로 넘어갔었는데

공항에 가니 한국 사람들이 몇몇 보였고 피부가 엄청 하얘서 엄청 이국적으로 느껴졌고..

키도 다들 어떻게 그렇게 큰지 엄청 어색하고 이질감이 들었다.

호주에 가서 한국인을 만나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어를 하도 오랜만에 해서 입 근육 혀 근육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지기 까지 했었다.

[필리핀 여행일기] 한글과 한류

엘리의 친구들을 밀크티 카페에서 만났다. 그동안 엘리의 친구를 여럿 만나보았지만, 이 친구들은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이들의 테이블에는 이미 주문한 밀크티가 놓여있었다. 필리핀은 많은 다른 나라들처럼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컵에 이름을 적어준다. 엘리의 친구들이 주문한 밀크티 컵에도 이름이 적혀있었다. 

놀랍게도 이름이 한글로 적혀있었다. “김남순”

한국을 좋아하는 엘리의 친구 중 하나가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와중에 나의 편협된 시각으로 ‘김남순’이라는 이름은 요즘 어린아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이라 그런 느낌 없이 이름을 지었을 것을 생각하니 귀여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엘리의 친구에게 물었다. “너 한국 이름 김남순이야?!”

친구는 내게 곧바로 답하는 대신 따갈로그어로 맞은 편의 친구에게 따지듯 뭔가 말했다. 그리곤 내게 물었다.

“나는 김남준이라고 쓰고 싶었는데.. 김남준 알지? 방탄소년단 멤버 중 한 명!”

다시 보니 마지막 글자는 ‘순’으로도 보이고, ‘준’으로도 보이는 모호한 글자였다.

그때 괜히 민망한 마음에 방탄소년단 잘 아는 척했지만,, 사실 애들아,, 난 요즘 아이돌 잘 몰라,, 너희가 나보다 더 잘 알아.. ㅎㅎ..


[07/13/25 추가]

이 친구 기억에 남는게 한국에 왔을 때 워낙 가격이 비싸니깐 숙소는 예약하지 않고 계단 같은 곳에서 박스를 깔고 자고 상가 화장실에서 씻으면서 지냈다고 했었다.

나중에는 우리집으로 오라고 했었는데.. 잘 지내는지 엘리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다.

근데 새삼.. 그때도 BTS 대단했던 거 같은데 지금처럼 한류가 더 대단해질지 알았을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징어 게임이 트렌드인 세상에 살아가다뉘

[필리핀 여행일기]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여행 후기를 보다 보면 종종 ‘한국과는 다르게 많이 기다려야 하니 주의하세요.’라는 글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곳에서 우리나라만큼의 ‘빨리빨리’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필리핀에서의 기다림은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본격적으로 하교가 시작되는 오후 4시부터 지프니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난다. 한 시간을 기다리는 건 일상이다.

필리핀에서 가장 큰 백화점 체인점에서 핸드폰 충전기를 산 적이 있다. 사자마자 고장이 났길래 교환하러 갔다. 직원들의 비효율적인 일 처리에 세 군데를 넘게 드나들며 두 시간은 기다렸다.

학교 첫날, 헬스장을 갔다가 학교에 지프니를 타고 가려는 계획은 틀어졌다. 지프니를 아무리 기다려도 꽉 차 있어서 좀만 걸어 나가서 타볼까 하다가 결국 학교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적은 인프라에 비해 많은 인구수 때문에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물론 매우 비효율적인 업무수행 방식도 매우 크게 한몫을 한다.

얼마 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중국인 친구와 충전기를 샀던 그 백화점에 갔다. 긴 기다림에 지친 중국인 친구가 본인의 나라에서는 이렇게 기다리는 건 상상할 수 없다며 화를 냈다.

그렇게 ‘인구수가 많아서 기다려야 하는구나.’ 하는 추측을 지웠다.

문제는 2월 한 달간 진행되는 바기오 꽃축제다. 필리핀에 오기 전부터 들었던 축제 기간의 악명높은 교통체증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상상이 가지도 않는다. 지금의 퇴근 시간보다 더한 교통체증이라니.. 다들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는 집에서 엄청 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