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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친구들에게 배드민턴에 대해 물으면 체감상 아는 사람이 1%도 안 되는 거 같다.

온갖 스포츠에 영 꽝인 내가 한국에서 그나마 재미를 붙였던 종목이 스쿼시와 배드민턴이었는데, 스쿼시는 체력이 너~무 요구가 되고, 몇 년 전 골프를 배우면서 몸이 너무 틀어져 스쿼시를 하면 더 틀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배드민턴도 편측 운동이라 걱정을 해야 할 것도 같은데 라켓도 가볍고 다른 것보다 힘이 안 들어가니까.. 무엇보다 재미있어서..^_^ 그냥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집트에서 배드민턴 같이 할 사람은 커녕 코트찾는 거 자체도 굉장히 어려워 보였다.

작년인가 한 번 카이로 한국학교에서 한인들이 모이는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배드민턴 코트와 라켓이 있어서 잠깐 친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엄청 재미있었다.

 

그 후로 몇 개월이 지나도 배드민턴을 못 잊겠어서 여러군데 찾아보다가 누군가 자기가 그룹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그것도 벌써 몇 개월 전인데, 얼마전에 페이스북 로그인을 간신히 했다가(그동안 인증 때문에 못들어가고 있었음! 들어갈 필요성도 그닥 못 느꼈고) 그 분이 메세지의 메세지를 확인했다.

 

몇 개월동안 읽지 않고 답변했지만 곧바로 답변을 주며 왓츠앱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아직 한 번도 모이지 않았고 곧 첫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위치는 집에서 한 20분 정도 떨어진 나세르 시티에 있는 곳이었는데, 택시로 110파운드가 나왔다. 코트 비용은 인 당 100파운드씩 냈다.

당연히 실외일거라고 생각을 해서 바람 많이 불면 재미없을텐데~ 생각하고 택시에서 내렸는데 실내에 코트가 있었다.

들어가는 방법을 몰라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는데 점프해서 들어오라고 하길래 걍 웃어주고 문을 찾아 들어왔다.

왓츠앱에서 2번 코트로 오라고 해서 거기로 갔다. 아시아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인걸보니 여기가 맞구나 싶었는데 나이가 꽤나 어려보였다. 뭐, 아시아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지하고 말을 걸었는데 그 사람들은 영 모르겠다는 눈치고 그 문으로 장난쳤던 일행이 오더니 Badminton Smashers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게 우리 그룹의 이름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알고보니 1번 코트에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나는 일정이 꼬여서 좀 늦게 도착한다고 이야기하고 실제로도 15분정도 늦었는데 역시나 이집트 타임이 여기에서도 적용이 되어서 하나도 안 늦었는데 왜 늦게 온다고 한 거냐고 물어봐서 웃겼다.

 

우리는 총 6명이었고, 한 번 칠 때마다 2:2로 11점 내기를 했다. 처음에 다들 몸이 안 풀려서 그런건지 뭔지 다들 못 쳐서 웃기기도 한데 랠리가 아예 안 돼서 이게 맞나..? 싶었다. 이 모임을 만든 오사마와 나 정도만 제대로 된 룰을 알고, 나머지들은 처음 룰을 듣고 조금 헤맸다.

오사마는 꽤나 잘해서 혼자 두 명에서 상대해도 될 듯했다. 그러다가 다들 나중에는 몸이 풀렸는지 갑자기 훅훅 잘해져서 점점 더 재미있게 플레이했다.

근데 실내인데 에어컨이 없어서 다들 엄청 더워하고 다음에는 다른 코트 찾자고 하며 고생 좀 했다ㅠㅋㅋㅋ

 

플레이를 하다가 사고도 있었는데 나랑 하빕이 한 편을 먹고 오사마와 후삼이 우리 반대편에서 치고 있었는데 하다가 너무 격해졌는지 하빕이 실수로 라켓으로 자기 엄지손가락을 내려치는 바람에 손톱이 깨지고 피가 났다.

꽤나 아파보였는데 다들 뒤에서 퍼퓸, 퍼퓸 이런 말을 하길래 속으로 “오잉? 되게 perfume하고 발음이 비슷하네, 아랍어로 무슨 뜻인지 알아두면 바로 외우겠다!” 싶어서 이거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근데 오사마가 장난으로 “그 너 향기나라고 뿌리는 그거 있지? 그거 말하는거야.” 이러길래 “아니 그건 알지~~ 내가 너 때문에 아랍어 배운다!!!” 이렇게 응수했다.

 

아니 그런데.. 알고보니 진짜 perfume을 말하는게 맞았음. 거기에 알콜이 들어가있어서 여기에서는 상처가 나면 다들 향수를 찾는다고 했다. 충격 🤯

아랍 사람들 정말 향수의 민족인건 알겠는데.. (헬스장에서도 향수 너무 찐하게 뿌려서 토하고 싶을 때가 100번 중에 110번임, 엘레베이터 탈 때마다 향수 속에 갇혀야 함) 상처에 향수를 붓는다니.. 너무 아플 거 같은것도 문제지만 거기에는 알콜만 있는게 아니고 다른 화학적인 것도 있을텐데…?

 

내가 놀라니깐 여기서도 거기 다른 화학적인 것들도 있지만 우리는 다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오사마도, 여기에서 의사인 낸시도 그렇게 말했다. 내가 이거 아랍 문화냐고 물으니깐 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하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더라.

진짜 왕충격.. 이렇게 또 이집트에 대해 배웠다.

 

재밌게 게임을 하고서는 하빕만 제외하고 다 같이 카페에 가기로 했다. 나는 낸시의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금연자 전용+에어컨있음), 이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밝고 좋게 느껴졌다. 낸시는 홍콩에서 태어난 이집션이라고 했다.

카페에 도착해서 수다를 떨었는데 또 그때 알게 된건 이집트 지폐에 워터마크가 어떻게 되어있는지였다(새로 발행된 지폐).

200 파운드로 알려줬는데 그걸 빛에 비춰보면 서기관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여기 지폐에는 선이 다 그어져있는데 그걸 자세히보면 아랍어로 몇 파운드인지 아주 작게 적혀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카페에서 시프의 여자친구인지 아내인지로 추정되는 마리암도 합류했는데, 쿨하면서도 친근함을 둘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한국 드라마에 중독이었어서 아직까지도 몇 문장을 기억하는데, 발음/속도/억양 전부 꽤 괜찮아서 놀랐다.

 

돌아올 때는 같은 마아디에 사는 후삼과 같이 디디를 타고 왔다. 후삼이 마아디에서 자기 친구들이랑 주기적으로 러닝도하고 보드게임도 한다고 해서 꼭꼭 초대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 보드게임 겁나 잘하니깐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밝고 번듯한 사람들임이 느껴졌다. 계속 주기적으로 배드민턴을 치며 친해지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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